열 받지 않는 인간관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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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030 여성들의 인간관계 상담을 보면 무척 흥이로운 맥락이 하나 발견된다.

그들이 자주 '열'받고 스트레스 받는 이유는 '착하기'때문인 것.
주변 사람들을 만족시키려고 무리해서 힘든 관계를 유지하려는 습성.
내가 싫어하는 사람들에게조차도 '좋은 여자'로 각인받고 싶어하는 것은
한국 여자 특유의 조화로움에 대한 강박인데, 스트레스는 바로 그 지점에서 시작되는 것 같다.

나는 여태 얼마나 많은 '피플 플리저'(나보다 남을 기쁘게 해주기 위해 무리하며 노력하는 사람)들을 봐왔던가.
대표적인 피플 플리저는 다름 아닌 바로 나였다.
...
어렸을 적부터 적학을 하도 많이 다녀 새 환경에 빨리 받아들여지고자 애썼던 습관이 남아서 그랬을까?
아니면 아무리 뭘 잘해와도 시원하게 칭찬 한 번 안 해주신 부모님 탓이었을까?

결과적으로 학교 다닐 적엔 선생님들께 이쁨 받으려고 애썼고
회사에선 흡족해하는 상사의 표정을 보기 위해 신체 일부의 마비증세를 무시했다.
가만 보자 연애할 때도 간 쓸개 다 빼주고,
맨날 난에게 징징대거나 남들의 뒷담화만 일삼는 친구를 이십년 가까이 밤낮으로 상대해주기도 했다.

그렇게 착하고 친절했던 이유는 내 오른쪽 어깨에 천사가 앉아 있어서가 아니라
오로지 그 대가로 사랑받고 감사받기 위함이었다.
내 행동은 의무감이나 죄책감에서 비롯된 친절함이었으니
상대의 욕구에 대한 진정한 관심은 없었던 것 같다.

더 억울한 건, 실은 내가 '별로 좋아하지도 않는' 인간들에게 무리하고 있었다는 점이다.
그러면서 당연히 기대했던 만큼 혹은 내가 무리한 만큼의 대가가 안 돌아오면
난 무척 속으로 상처를 받고 겉으로는 열을 냈다.
분노를 차곡차곡 안에서 쌓다 보면 이따금 곪아 터지기도 했다.
어쩌다가 다행히 상대가 눈치채고 내가 원했던 인정과 감사를 받았다해도 여전히 섭섭함을 느꼈다.
"내가 이렇게까지 해줬는데 겨우 돌아오는 게 이거냐?" 싶었던 것이다.

그러니 내 자신을 포기하면서까지 베풀어서 남은 것은 더 공허해진 마음과 더 커진 수치심뿐이었고,
다음에는 그러지 말아야지 해도 오히려 더 갖다 퍼주며
'이 정도 해주면 충분하겠지?'라며 상대에게 호의를 가장한 부담을 강요했던 것 같다.

속으로는 분노를 느낀 체 겉으론 친절히 행동하는 모순을 발견하고 난 양자택일을 해야만 했다.
"내 욕구를 포기시킨 스스로에게 화를 낼까" 아미녀 내 욕구를 우선시한 댁가로 상대에게 상처를 줄까?
그리고 마침내 나는 타인을 위해 나를 포기하지 않기로 했다.
상대방을 위해 내가 무리하지 않기로 한 것이다.
그리고 상대에게 화를 내는 쪽보다 상대가 나에게 화내는 쪽을 받아들이기로 했다.
나 자신과의 관계에서 문제를 을으키느니 차라리 상대와 문제를 일으키고 말자.!
아, 이 사고방식의 변화는 나라는 사람에겐 상상을 초월할 정도로 힘들었다.
대한민국에서 나름 반듯하게 성장한 딸들이라면,
통제력이 강한 채로 성장했으니 남에게 싫은 소리하기보다 자신에게 싫은 일을 강요하는 것이 차라리 식은 죽 먹기였을니까 말이다.

그런데 진정으로 의미있는 인간관계를 위해서
'그 누구보다도 내가 제일 행복해야 하는 사람'이라는 것을 나는 참 뒤늦게 깨달았다.
비로소 나는 이제 거의 마흔이 다 되어서야, 나의 욕구에 충실하고도, 아니 다시 말해,
나의 욕구에 우선적으로 충실해야만 상대와 무슨 문제를 겪든
잘 해결할 수 있다는 확실한 감촉을 감지할 수 있었다.
아니 다시 한번 제대로 말하겠다.

"내가 나를 포기한다면 그 어떤 문제도 근본적으로 해결할 수가 없다!"
이 단순한 사실을 체득하기 위해 참 먼 길을 돌아왔다.

내 속 편하고, 내 속에서 열 안받으려면 이렇게 '나'의 감정을 우선시해야 한다.
하지만 여기에는 또 다른 대가를 치우러야 한다.
나 혼자 외톨이가 되어도 될만큼 강해져야 한다.
그리고 내가 결코 타인을 근본적으로 변화시킬 수 없음을 겸허하게 인정해야만 한다.

나의 자유를 위해 타인의 자유도 인정해 주어야 한다.
그래도 사십년 '착한 여자'의 인생경험을 걸고 감히 말하자면,
엄한 데 열불 나고 끝탕 하느니 이 편이 백 번 났다.
우리, 쿨하게 가자.


[출처] <열 받지 않는 인간관계> 임경선, people pleasure|작성자 엘렌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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